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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쟁(相爭) 지상의 모든 것이 영월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오만이 아니라 현실이 그랬다. 사랑해주는 양친, 비단길을 건너 들어온 화려한 옷, 혼자서는 결코 다 먹을 수 없는 진수성찬, 수많은 여흥거리와 형제같은 친구, 아름다운 황궁.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풍경 안에서 영월은 자라났고, 어떤 파문도 변화도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조정은 피비린 곳이었지만 어차피 그의 세상은 조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설소. 한결같이 영화로웠던 세계가 한차례 ..
[장료곽가] 검정 속의 그리기 다른 방식으로 만나는 우리의 상상을 한다. 내가 좀 더 어리석지 않거나, 둘 다 전혀 다른 세계에서 태어나거나, 아니면 그 자가 이 그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상상. 다른 방식으로 만나고,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공유하는….우리가 그에 준하는 어떤 대단한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상상은 성립한다. 나와 그 자는 친구가 아니었다. 기실 친구가 되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장합과 고람의 건을 논의했던 막사를 나올 땐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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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30 무제 침대 옆 하얀 협탁, 익숙한 자리에 손을 뻗자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다. 손을 잘못 뻗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늘 있는 자리에 물건이 없는 것은 그에게는 예사가 아니었다. 팔을 좀더 멀리 움직였다. 사각형의 나무 위를 한 바퀴 더듬없으나 여전히 손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그는 팔을 거두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협탁에 까만 실루엣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책상으로 다가가 서랍을 열어 예비용 안경을 꺼냈다. 한층 맑아진 시야로 방을..
살랑이는 바다의 한숨, 소금기 어린 미풍의 입맞춤 The sigh of the shifting seaThe kiss of the salt-sweet breezeThe white of her silken dress stained in red살랑이는 바다의 한숨소금기 어린 미풍의 입맞춤붉게 얼룩진 그녀의 흰 치맛자락A memory fading fast,Her mother sits, eyes downcastA torn uniform in hand, farewells unsaid기억은 빠르게 희미..
[귀네비어] 천 권의 책 귀네비어의 눈에 모그리들은 꼭 민들레 홀씨 같았다. 작달만한 날개보다는 머리에 달린 풍선을 통해 날아다니는 것 같았고, 조그마한 무기나 지팡이가 발휘하는 마법은 대체로 위대한 종류는 아니었다. 적어도 최근의 모험가들이 보기에는 그랬다.민들레 홀씨들이 만든 군집. 드라바니아 구름바다의 모그리족에 대한 인상은 그런 느낌이었다. 귀네비어는 그들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대단한 생각을 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구름바다 모그리들..
[귀네비어] 비환상영역 非幻想領域, School of Aesthetics천장은 고개가 아프도록 올려다봐야 하는 높이에 있었다. 건물 전체가 희미한 청록빛으로 밝혀지고 있었는데, 조명의 색이 그렇다기보단 외부에서 들어오는 약간의 빛이 안쪽의 청록색 도료 혹은 재질과 만나 흩어지기 때문이었다. 어두웠다. 도서관임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부적절한 조명들이었다. 나름대로 말끔한 상태의 서가와 가구들이 그 부분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다. 언제 와도 첫 인상은 그랬다.“어둑하네요.”입구..
태양은 지고 어둠이 덮여온다. 이 혼돈의 날 너는 어여쁘게도 차려입었구나 What is it like when you pull back the curtainAnd realize every wrong is a right?Your world is rusted like a dirty razorThe edge is calling tonight커튼을 걷어 그 뒤를 확인하는 것은 어떤 기분이느냐잘못되었다고 믿었던 모든 것이 실은 옳았음을 깨닫는 것은?네 세계는 더러운 면도칼처럼 녹슬었으며그 칼날은 이 밤 종언을 불러왔느니라The e..